닛산 자동차는 1911년 일본에서 설립된 자동차 제조 회사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일원이다. 1930년대 '닛산'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1999년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닛산은 닷선, 인피니티, 니스모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승용차, 트럭, 전기차 등 다양한 차종을 생산한다. 2004년 한국닛산이 설립되어 한국 시장에 진출했으나, 판매 부진과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2020년 철수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닛산 스타디움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닛산 스타디움은 72,327명을 수용 가능한 다목적 경기장으로,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개최 및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홈 경기장 사용, 유명 아티스트 콘서트 개최 등 스포츠와 문화 행사를 위한 복합 공간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 다치아 다치아는 1966년 루마니아에서 설립된 자동차 제조사로, 르노 차량을 면허 생산하며 시작하여 자체 모델을 개발하고 르노에 인수된 후 저가형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 인피니티 인피니티는 닛산이 미국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1989년 렉서스, 아큐라와 함께 출시한 브랜드로, 초기 자연을 강조한 광고로 인지도를 높였으나 판매 부진과 경제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브랜드 재건에 성공하여, 현재는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1933년 설립된 기업 - 멕시코 증권거래소 멕시코 증권거래소는 1894년 국립 증권거래소로 시작하여 멕시코의 주요 증권 거래소로 발전했으며,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거래하고 IPC를 포함한 다양한 주가 지수를 산출한다.
1933년 설립된 기업 - 산요 전기 철도 산요 전기 철도는 효고현의 고베시와 히메지시를 연결하는 일본의 사철로, 1933년 효고 전기궤도와 고베 히메지 전기철도의 합병으로 설립되었으며, 한신 전기철도 및 한큐 전철과의 직통 운행을 통해 고베와 오사카 지역의 연계를 강화했으나, 현재는 한큐 한신 홀딩스의 자회사로서 경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닛산 자동차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회사명
닛산 자동차 주식회사
영문 회사명
Nissan Motor Co., Ltd.
2020년 이후 로고
요코하마에 있는 닛산 본사
설립일
1933년 12월 26일 (닛산 그룹 산하)
설립자
하시모토 마스지로 DAT 라인: 덴 겐지로 로쿠로 아오야마 메이타로 다케우치 아이카와 요시스케 윌리엄 R. 고햄
운송: 닛산 상용차 둥펑 자동차 (50%) 닛산 샤타이 (43%) 미쓰비시 자동차 (24.5%) NMKV (50%) 기타: 닛산 테크노 지야토코 국제: 닛산 오스트레일리아 닛산 이베리카 닛산 인도 르노 닛산 오토모티브 인도 프라이빗 리미티드 닛산 인도네시아 닛산 뉴질랜드 닛산 필리핀 닛산 남아프리카 닛산 영국 닛산 미국
1911년 하시모토 마스지로는 도쿄 아자부 지역에 쾌진사 자동차 공장(Kwaishinsha Motor Car Works)을 설립했고, 1914년에 첫 번째 자동차인 DAT를 생산했다.[1][2][3]
닛산 DAT 11
새로운 자동차의 모델명은 투자자들인 덴 켄지로('''D'''), 아오야마 로쿠로('''A'''), 타케우치 메이타로('''T''')의 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1918년 회사 이름은 가이신샤 자동차 주식회사(Kaishinsha Motorcar Co., Ltd.)로 변경되었고, 1925년에는 다시 DAT 자동차 주식회사(DAT Jidosha & Co., Ltd.)로 변경되었다. 1926년, 도쿄에 본사를 둔 DAT 모터스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실용자동차 주식회사(Jitsuyo Jidosha Co., Ltd)와 합병하여 DAT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DAT Jidosha Seizo Co., Ltd Automobile Manufacturing Co., Ltd.)가 되었다. 1931년, DAT는 "DAT의 아들"을 의미하는 첫 번째 "Datson"인 DAT 11이라는 새로운 소형차를 출시했다. 1933년 닛산 자동차 자이바츠가 DAT 모터스를 인수한 후, Datson의 마지막 음절이 일본어로 "손실"을 의미하는 "son"이었기 때문에 "sun"으로 변경되어 "닛산"이라는 이름이 되었다.[15]
1933년, 회사 이름은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Jidosha-Seizo Co., Ltd.)로 일본식 영어로 변경되었고 요코하마로 이전되었다. 같은 해 후쿠오카현 도바타 시(현재의 기타큐슈시 토바타구)에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의 자회사로서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1934년에 이 회사를 '''닛산 자동차 주식회사'''로 개칭한 것이 닛산의 시작이다.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1928년 지주회사 '''니혼 산교'''(日本産業, Japan Industries 또는 Nihon Industries)를 설립했고, '닛산'이라는 이름은 1930년대에 '''니'''혼 '''산'''교의 약자로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사용되면서 유래했다.[16]1934년, 아이카와는 확장된 도바타 주조의 자동차 부품 부문을 분리하여 새로운 자회사로 설립하고 日産自動車|닛산 자동차일본어라고 명명했다.[20]1935년, 요코하마 공장 건설이 완료되었고, 44대의 닷선이 아시아, 중남미로 수출되었다. 같은 해 요코하마 공장에서 통합 조립 시스템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자동차가 생산 라인에서 나왔다.[13]
그레이엄-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닛산 70형 세단
닛산은 미국의 윌리엄 R. 고럼을 영입하여 미국의 자동차 제조 기술을 도입했다. 1937년 "닛산" 브랜드로 더 큰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설계 계획과 공장 시설은 그레이엄-페이지 사에서 공급받았다.[20]
1936년9월 14일, 자동차 제조 사업법에 따라 토요타 자동직기 제작소와 함께 정부로부터 자동차 제조 허가를 받았다.[206]1958년에는 호주 대륙 일주 랠리에 자체 개발한 닷선 210형으로 출전하여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였고, 1960년에는 업계 최초로 데밍상을 수상하는 등, “기술의 닛산”으로 불리며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1966년8월 1일, 경영난에 빠진 프린스 자동차 공업을 통상산업성 주도로 합병하였다. 스카이라인, 글로리아 등의 차종과 나카지마 비행기, 다치카와 비행기 계열의 인재를 영입하였다.
1966년형 프린스 R380 레이스카
1964년 하계 올림픽 당시 재투자를 활용하기 위해 닛산은 도쿄 긴자 산아이 빌딩 2층과 3층에 전시장을 설립했다. 방문객 유치를 위해 닛산은 아름다운 여성 쇼룸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 자동차를 소개했던 "닷선 데몬스트레이터"를 본떠 닛산 미스 페어레이디 1기 5명을 선발하는 대회를 개최했다. 페어레이디라는 이름은 당시 인기 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유래했다.
1973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연비 테스트에서 써니가 1위를 차지하였다. 1980년대에는 “1990년까지 기술 세계 제일이 된다”는 목표 아래, 모든 차종을 대상으로 엔진을 비롯한 섀시와 서스펜션 설계 목표와 주행 실험에서의 핸들링 평가 기준을 대폭 향상시키는 “901 활동”을 진행했다.
일본의 버블 붕괴의 영향과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의 미흡, 노조 운동 등으로 인해 1998년에는 약 2조 엔의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경영 위기에 몰리게 된다. 1999년 3월, 지속적인 판매 부진으로 2조 엔이 넘는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도산 직전의 경영 상태에 놓인 닛산은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와 자본 제휴(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맺고 르노의 자회사가 되어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제휴 내용은 르노가 6430억엔 (50억유로//54억달러)를 출자하여 닛산 자동차 주식의 36.8%, 닛산 디젤 공업 주식의 22.5%를 취득하고, 닛산 자동차의 유럽 판매 금융 회사도 취득한다는 것이었다.
2016년 닛산은 연비 조작 문제가 불거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지분 34%를 22억달러에 인수하여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라는 삼자 체제가 되었다.[331]
2004년3월 10일 한국닛산이 설립되었다.[329]2005년7월인피니티 판매를 시작했고, 2008년11월 11일에는 무라노와 로그를 대한민국 시장에 출시했다.[329] 이후 알티마(2009년),[329] 370Z와 GT-R(2009년),[329] 큐브(2011년),[329]쥬크(2013년),[329] 패스파인더(2014년),[329] 캐시카이(2014년),[329]리프(2014년),[329] 맥시마(2015년)[329] 등을 출시하며 다양한 차종을 선보였다. 2014년9월 26일부터는 신형 로그를 르노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에서 생산 및 수출하기 시작했다.[330]
그러나 판매 부진, 적자,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2020년5월 28일 한국닛산은 12월까지 영업을 종료하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329]
2. 1. 초기 역사 (1911년 ~ 1933년)
하시모토 마스지로는 1911년 7월 1일 도쿄 아자부 지역에 쾌진사 자동차 공장(Kwaishinsha Motor Car Works)을 설립했다. 1914년, 이 회사는 첫 번째 자동차인 DAT를 생산했다.[1][2][3]
새로운 자동차의 모델명은 투자자들의 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덴 켄지로('''D''')
아오야마 로쿠로('''A''')
타케우치 메이타로('''T''')
1918년 회사 이름은 가이신샤 자동차 주식회사(Kaishinsha Motorcar Co., Ltd.)로 변경되었고, 1925년에는 다시 DAT 자동차 주식회사(DAT Jidosha & Co., Ltd.)로 변경되었다. DAT 모터스는 승용차 외에도 트럭을 생산했는데, 당시 승용차 시장이 거의 없어 생산량의 대부분은 트럭이었다. 1918년부터 최초의 DAT 트럭이 군용 시장을 위해 생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상업 운영이 중단되었고, 회사는 전쟁을 위해 노력했다.
1926년, 도쿄에 본사를 둔 DAT 모터스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실용자동차 주식회사(Jitsuyo Jidosha Co., Ltd)와 합병하여 DAT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DAT Jidosha Seizo Co., Ltd Automobile Manufacturing Co., Ltd.)가 되었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회사는 Lila라는 이름으로 경차와 트럭을 생산했다.[14]
1931년, DAT는 "DAT의 아들"을 의미하는 첫 번째 "Datson"인 DAT 11이라는 새로운 소형차를 출시했다. 1933년 닛산 자동차 ''자이바츠''가 DAT 모터스를 인수한 후, Datson의 마지막 음절이 일본어로 "손실"을 의미하는 "son"이었기 때문에 "sun"으로 변경되어 "닛산"이라는 이름이 되었다.[15]
1933년, 회사 이름은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Jidosha-Seizo Co., Ltd.)로 일본식 영어로 변경되었고 요코하마로 이전되었다.
1910년후쿠오카현 도바타 시(현재의 기타큐슈시 토바타구)에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현재의 프로테리얼)가 설립되었는데, 1929년 자동차용 몰드 주철 제조를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일본산업주식회사(약칭, 닛산)로 회사명이 변경되었고, 후일 일본산업 콘체른의 기반이 된다.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의 자회사로서, 1931년에 닷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를 거느리게 된다. 1933년 닷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가 주식회사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제작소와 합병하여 자동차공업주식회사(현재의 이스즈 자동차)를 설립함에 따라,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가 닷선의 상표와 제조권, 그리고 오사카 공장을 무상으로 양수받고, 일본산업주식회사의 투자를 더하여 같은 해 12월, 다시 닷선 제조를 위해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1934년에 이 회사를 '''닛산 자동차 주식회사'''로 개칭한 것이 닛산의 시작이다.
1911년에 설립된 쾌진사가 1914년에 탄생한 닷호가 최초의 자동차 개발 및 제조였다. 그러나 닷선의 지적 재산권과 오사카 공장을 얻은 것은 닛산이었다.
2. 2. 닛산 자동차 설립과 발전 (1933년 ~ 1966년)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1928년 지주회사 '''니혼 산교'''(日本産業, Japan Industries 또는 Nihon Industries)를 설립했다. '닛산'이라는 이름은 1930년대에 '''니'''혼 '''산'''교의 약자로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사용되면서 유래했다.[16] 이 회사는 도바타 주조와 히타치를 포함한 닛산 그룹 "자이바츠"였다. 당시 닛산은 주조 공장과 자동차 부품 사업을 관리했지만, 아이카와는 1933년까지 자동차 제조업에 진출하지 않았다.[17]
이 자이바츠는 결국 74개의 회사로 성장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가 되었다.[18] 1931년 DAT 자동차 제조는 '''도바타 주조'''와 제휴했고, 1933년 도바타 주조에 합병되었다. 도바타 주조가 닛산 계열사였기 때문에 이것이 닛산의 자동차 제조의 시작이었다.[19]
1934년, 아이카와는 확장된 도바타 주조의 자동차 부품 부문을 분리하여 새로운 자회사로 설립하고 日産自動車|닛산 자동차일본어라고 명명했다.[20] 그러나 신설 회사의 주주들은 일본에서 자동차의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아이카와는 1934년 6월 (일본산업의 자본을 이용하여) 도바타 주조의 모든 주주들을 매입했다. 이때 닛산 자동차는 사실상 일본산업과 히타치의 소유가 되었다.[21]
1935년, 요코하마 공장 건설이 완료되었다. 44대의 닷선이 아시아, 중남미로 수출되었다. 같은 해 요코하마 공장에서 통합 조립 시스템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자동차가 생산 라인에서 나왔다.[13] 닛산은 일본 제국 육군을 위해 트럭, 비행기, 엔진을 생산했다.
DAT은 쿠보타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미국 엔지니어 윌리엄 R. 고럼을 영입했다. 이것은 아이카와의 1908년 디트로이트 방문과 함께 닛산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13][24] 아이카와가 항상 미국 최첨단 자동차 제조 기술을 사용하려는 의도였지만, 고럼이 그 계획을 실행했다. 대부분의 기계와 공정은 원래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닛산이 1937년 "닛산" 브랜드로 더 큰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설계 계획과 공장 시설은 그레이엄-페이지 사에서 공급받았다.[20] 닛산은 또한 승용차, 버스 및 트럭을 생산하는 그레이엄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다.[24]
1986년 데이비드 핼버스탐은 그의 저서 ''심판''에서 "기술 측면에서 고럼은 닛산자동차의 창립자였다"고 말했다.[25]
1905년, 아이카와 요스케가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주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을 계기로, 미국 산업의 정점에 자동차 산업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귀국 후, 1910년후쿠오카현 토바타시(현재의 기타큐슈시 토바타구)에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현재의 프로테리얼)를 설립했다. 1928년에는 일본산업주식회사(약칭, 닛산)로 하였다. 후일 '''일본산업 콘체른'''의 기반이 된다.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의 자회사로서, 1931년에 닷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를 거느리게 되지만, 1933년 닷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가 주식회사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제작소와 합병하여 자동차공업주식회사(현재의 이스즈 자동차)를 설립함에 따라, 토바타 주조 주식회사가 닷선의 상표와 제조권, 그리고 오사카 공장을 무상으로 양수받고, 일본산업주식회사의 투자를 더하여 같은 해 12월, 다시 닷선 제조를 위해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를 다음 해인 1934년에 '''닛산 자동차 주식회사'''로 개칭한 것이 닛산의 시작이다.
1936년 9월 14일, 자동차 제조 사업법에 따라 토요타 자동직기 제작소와 함께 정부로부터 자동차 제조 허가를 받았다.[206]
창업 초기부터 첨단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닛산 자동차는 일본 포드나 일본 제너럴 모터스 수준의 대형 승용차를 제조하기 위해, 1936년에 미국의 그레이엄-페이지로부터 설계도와 설비 등을 구입하였고, 또한 전쟁 중 기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2년에 영국의 오스틴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
1958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호주 대륙 일주 랠리에 자체 개발한 닷선 210형으로 출전하여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였고, 1960년에는 업계 최초로 데밍상을 수상하는 등, 창업 초기부터 기술력이 높아서 “깃발은 일장기, 자동차는 닷선”, “기술의 닛산”으로 친숙했고, 고장이 적고 고속 주행에 능숙하여 의사의 왕진에 애용되었기 때문에 “의사의 닷선”으로도 친숙했다.
1966년 8월 1일, 경영난에 빠진 프린스 자동차 공업을 통상산업성 주도로 합병하였다. 스카이라인, 글로리아 등의 차종과 나카지마 비행기, 다치카와 비행기 계열의 인재를 영입하였다.
2. 3. 프린스 자동차 합병과 성장 (1966년 ~ 1999년)
1966년 프린스 자동차와 합병하여 스카이라인, 글로리아 등 고급 차량을 제품 라인업에 추가했다. 프린스라는 이름은 결국 사라졌고, 이후 스카이라인과 글로리아는 닛산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1999년 "닛산 레드 스테이지"로 바뀔 때까지 일본 닛산 대리점 "닛산 프린스 숍"에서 "프린스"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닛산 레드 스테이지는 2007년에 다시 변경되었다. 스카이라인은 인피니티 G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1964년 하계 올림픽 당시 재투자를 활용하기 위해 닛산은 도쿄 긴자 산아이 빌딩 2층과 3층에 전시장을 설립했다. 방문객 유치를 위해 닛산은 아름다운 여성 쇼룸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 자동차를 소개했던 "닷선 데몬스트레이터"를 본떠 닛산 미스 페어레이디 1기 5명을 선발하는 대회를 개최했다. 페어레이디라는 이름은 당시 인기 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유래했다. 미스 페어레이디들은 닷선 페어레이디 1500의 마케터가 되었다.[35][36][37]
1966년 8월 1일, 경영난에 빠진 프린스 자동차 공업을 통상산업성 주도로 합병하였다. 스카이라인, 글로리아 등의 차종과 나카지마 비행기, 다치카와 비행기 계열의 인재를 영입하였다. 또한 프린스 자동차 공업의 우주 개발 사업을 계승하여 우주항공사업부를 설립하였다. 1968년에는 후지 중공업과 자본 업무 제휴를 맺었다.
1973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연비 테스트에서 써니가 1위를 차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연비 향상을 위한 고장력강판과 차체 방청성 향상을 위한 아연니켈도금합금을 사용한 방청 강판(닛산에서는 "듀라스틸"이라고 명명), 엔진의 연소 제어 기술 개발부터 CAD/CAM, 산업용 로봇 개발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닛산"으로서 첨단 기술 분야의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전시 중 자동차 배급을 독점했던 "일본자동차배급주식회사"가 전후 해산되면서 일본 국내 각지의 지역 유력 딜러 대부분이 토요타 자동차 판매(현 토요타 자동차)에 조직화되었기 때문에 판매력에서 핸디캡을 지니게 되었다. 기술 면에서는 "기술의 닛산"이라고 칭찬받을 정도로 우위를 유지했지만, 판매 면에서는 마케팅과 판매 전략에서 업계 최고가 된 토요타에 미치지 못했고, 1980년대 이후로는 토요타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1980년대에는 “1990년까지 기술 세계 제일이 된다”는 목표 아래, 모든 차종을 대상으로 엔진을 비롯한 섀시와 서스펜션 설계 목표와 주행 실험에서의 핸들링 평가 기준을 대폭 향상시키는 “901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일본차의 상품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 시기에는 K10형 마치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파이크카로서 1만 대 한정으로 출시되어 2개월 만에 예약이 완판된 Be-1, 당시 일본 유일의 3넘버 전용 고급차였던 Y31형 시마, 데이트카로 인기를 얻었던 S13형 실비아 등을 히트시키며, “Be-1 효과”나 “시마 현상”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다. “901 활동”을 바탕으로 개발된 R32형 스카이라인, Z32형 페어레이디 Z 등 스포츠카 계열 차종은 물론 P10형 프리메라 등 세단 계열 차종도 높은 평가를 받는 등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1991년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개발·출시된 U13형 블루버드(특히 EEX/SSS 계열 4도어 세단), C34형 로렐, B14형 써니(B14형 루키노 쿠페 포함), S14형 실비아, R33형 스카이라인(R33형 GT-R 제외), R11형 프레세아, N30형 루네사 등의 차종은 계속해서 판매 부진에 허덕이며, 침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의 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고가의 고수익 차종인 시마, 세드릭, 글로리아 등의 판매가 감소한 데다, 상품 기획(마케팅)과 판매 전략이 서툴렀고 히트 차종을 많이 내놓지 못했으며, 격렬한 노조 운동에 발목이 잡혀 대대적인 원가 절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재무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901 활동"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초래한 주행 실험부와 디자인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는 약 2조 엔의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경영 위기에 몰리게 된다.
A32형 세피로, E50형 엘그랜드, K11형 마치, C23형 바넷 세레나(이후 세레나) 등은 꾸준히 판매량을 늘리며 닛산을 지탱했지만, 경차 시장 확대를 배경으로 경차를 포함한 일본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 혼다에 뒤쳐지며 국내 시장 점유율 3위로 추락했다.
지속적인 판매 부진으로 2조 엔이 넘는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도산 직전의 경영 상태에 놓인 1999년 3월,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와 자본 제휴(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맺고, 르노의 자회사가 되어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제휴 내용은 르노가 6.43조엔(약 500억유로//540억달러)를 출자하여 닛산 자동차 주식의 36.8%, 닛산 디젤 공업 주식의 22.5%를 취득하고, 닛산 자동차의 유럽 판매 금융 회사도 취득한다는 것이었다.
2. 4. 르노와의 제휴와 재건 (1999년 ~ 현재)
1999년 경영난 악화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프랑스르노의 계열사로 해외 매각된 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이 되었다.
닛산과 르노는 서로 상대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로 제휴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프랑스 국내법의 제한으로 닛산은 르노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닛산이 보유한 르노 주식이 훨씬 적어(15%) 르노가 닛산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2016년 닛산은 연비 조작 문제가 불거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지분 34%를 22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르노 닛산 양자 간의 얼라이언스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라는 삼자 체제가 되었다.[331]
얼라이언스의 수장사인 르노는 닛산 외에도 대한민국의 르노코리아자동차, 루마니아의 다치아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일본의 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시마, 세드릭, 글로리아 등 고가 고수익 차종의 판매가 감소했다. 또한, 상품 기획( 마케팅 )과 판매 전략이 미흡했고, 히트 차종을 많이 내놓지 못했으며, 격렬한 노조 운동으로 인해 대대적인 원가 절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재무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901 활동"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초래한 주행 실험부와 디자인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는 약 2조 엔의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경영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1999년 3월, 지속적인 판매 부진으로 2조 엔이 넘는 유리자 부채를 떠안고 도산 직전의 경영 상태에 놓인 닛산은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와 자본 제휴(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맺고 르노의 자회사가 되어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제휴 내용은 르노가 6430억엔 (50억유로//54억달러)를 출자하여 닛산 자동차 주식의 36.8%, 닛산 디젤 공업 주식의 22.5%를 취득하고, 닛산 자동차의 유럽 판매 금융 회사도 취득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매 부진, 적자,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2020년5월 28일 한국닛산은 12월까지 영업을 종료하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329] A/S는 2028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다.[329]
3. 브랜드
닛산은 현재 닛산, 인피니티, 니스모(Nismo)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닷선(Datsun) 브랜드를 운영했다.
닛산 (Nissan): 닛산의 주력 브랜드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인피니티 (Infiniti): 1989년부터 닛산의 고급 모델을 판매하는 브랜드이다. 2012년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했으며,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일본 시장에서 스카이라인(인피니티 Q50)과 후가(인피니티 Q70)가 인피니티 엠블럼을 달고 판매되었다.[112]
니스모 (Nismo): 닛산의 자체 튜닝 업체이자 고성능 브랜드이다.[113][114]
닷선 (Datsun): 1983년까지 대부분의 수출 시장에서 닛산 자동차는 닷선(Datsun)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1984년에 닛산 브랜드로 통합되었으나, 2013년에 신흥 시장을 겨냥하여 다시 출시되었다. 그러나 판매 부진으로 2022년에 다시 판매가 중단되었다.[110][111]
수년 동안 닛산은 회사의 로고로 붉은색을 사용했고, "닛산"과 "인피니티" 브랜드에는 자동차 배지를 사용했다.[115] 2013년에는 "회사로서의 닛산과 브랜드로서의 닛산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새로운 강철 파란색 로고"를 공개했다.[116] 2020년 7월, 아리아 출시와 함께 새로운 기업 및 브랜드 로고를 도입했다.[118]
1999년 이전에는 닛산 블루 스테이지, 닛산 레드 스테이지, 닛산 레드 & 블루 스테이지라는 대리점 네트워크를 운영했었다. 2007년부터 일본에서는 닛산이 전면에 "닛산"이라는 글자가 적힌 크롬 원형을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닛산" 간판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3. 1. 닛산 (Nissan)
닛산의 주력 모델들은 닛산 브랜드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1950년대부터 닛산은 세계 시장 진출을 결정하고, 자사의 닷선 소형차 라인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등에서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판단했다. 1958년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서 닷선 블루버드를 선보였고,[13][41] 195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번째 자동차를 판매하며 중동 시장에도 진출했다.[42]
1960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르데나에 미국 자회사인 닛산 모터 코퍼레이션 USA를 설립하고 카타야마 유타카가 이끌었다.[13][43] 닛산은 닷선 페어레이디 로드스터, 411 시리즈, 닷선 510, 닷선 240Z와 같은 스포티한 자동차를 생산하며, 1970년까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44]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소비자들은 고품질의 소형 경제차를 찾기 시작했고, 닛산은 닛산써니를 출시하고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만,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했다. 1980년에는 스마나 조립 공장을 착공하여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닛산 알티마, 닛산 맥시마, 로그, 패스파인더, 인피니티 QX60, 닛산 리프 등 다양한 승용차 및 SUV를 생산하고 있다.
1980년대 초, 닛산 닷선은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일본 브랜드였다.[47] 2001년에는 브라질에 제조 공장을 설립했고, 2005년에는 닛산 모터 인디아 프라이빗 리미티드를 통해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49]르노와 함께 첸나이에 제조 시설을 설립하여 인도 시장과 유럽으로의 소형차 수출 거점을 마련했다.[50][51]
2009년 동풍자동차와의 합작 투자를 통해 중국에서 약 52만 대의 신차를 판매했으며, 광저우의 생산 기지를 확장하여 생산 능력 면에서 닛산의 세계 최대 공장이 되었다.[52]
닛산은 다양한 주류 승용차와 트럭 외에도 닛산 페어레이디 1500, 1600 및 2000 로드스터, Z카, GT-R 등 스포츠카도 생산했다. 1985년에는 경주 및 성능 개발을 위한 튜닝 부서인 닛모(Nismo)를 설립했다.
2011년에는 닛산 NV 시리즈를 출시하며 '닛산 상용차'(Nissan Commercial Vehicles)라는 상용차 서브 브랜드를 설립했다.[121]
2016년 2016 제네바 모터쇼에서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Nissan Intelligent Mobility) 비전을 발표했다.[123]데이즈, 로그, 리프 등 대부분의 닛산 차량에는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 기술이 장착되어 있다.
2019년 2월 3일, 영국 북동부 선덜랜드 공장에서 익스트레일 차기 모델 생산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222]
2020년 5월 28일, 1992년 이후 27년 만에 6712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고, 사업 구조 개혁 계획인 'NISSAN NEXT(닛산 넥스트)'를 발표했다.[223][224]
2020년 7월 15일, 새로운 CI가 도입되고, 19년 만에 브랜드 로고가 새롭게 바뀌었다.
1983년까지 대부분의 수출 시장에서 닛산 자동차는 닷선(Datsun)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1984년 닷선 브랜드는 단계적으로 없어지고 닛산 브랜드로 전환되었다. 2013년 닛산은 신흥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로 닷선을 재출시했으나, 부진한 판매로 2022년 판매를 종료했다.[110][111]
1989년부터 닛산은 고급 모델을 인피니티 브랜드로 판매해왔다.
3. 2. 인피니티 (Infiniti)
1989년 닛산이 도요타의 렉서스와 함께 출시한 프리미엄 고급 세단 브랜드이다. 렉서스와 달리 우아함보다는 스포티함을 추구했지만, 일본풍을 드러내는 광고 때문에 판매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부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공식 수입되어 판매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Q45, M35hL (현 Q70L), M45, M37, M35, M35h, M30d (현 Q70), G37, G35 (세단 / 쿠페, 현 세단은 Q50, 현 쿠페는 Q60), G25 (현 Q40), EX35, EX37 (현 QX50), JX35, JX35h (현 QX60), FX30d, FX35, FX37, FX45, FX50 (현 QX70), QX56 (현 QX80) 모델을 판매했다.[72] 2019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업 환경이 악화되자, 닛산은 인피니티 브랜드와 함께 2020년 12월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73] 다만, 닛산은 서비스 센터를 통해 8년간 차량 품질 보증 및 부품 관리 등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3. 3. 니스모 (Nismo)
Nismo영어는 "닛산 모터스포츠 인터내셔널 리미티드(Nissan Motorsport International Limited)"의 약자이다.[230] 닛산의 자체 튜닝 업체인 니스모는 닛산의 고성능 브랜드로 재포지셔닝되고 있다.[113][114]
3. 4. 닷선 (Datsun, 과거 브랜드)
1983년까지 대부분의 수출 시장에서 닛산 자동차는 닷선(Datsun)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1950년대 닛산은 세계 시장 진출을 결정하면서, 닷선 소형차 라인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등에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13][41] 1958년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서 닷선 블루버드를 선보였고,[13][41] 1960년에는 미국 자회사인 닛산 모터 코퍼레이션 USA를 설립하여 카타야마 유타카가 이끌었다.[43][13] 닛산은 닷선 페어레이디 로드스터, 411 시리즈, 닷선 510, 닷선 240Z와 같은 스포티한 자동차를 생산하며, 1970년까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44]
1984년 닷선 브랜드는 단계적으로 없어지고 닛산 브랜드로 전환되었다. 1984년 생산된 모든 차량에는 닷선과 닛산 브랜드가 모두 표시되었고, 1985년에는 닷선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2013년 7월 닛산은 신흥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로 닷선을 재출시했다.[110] 하지만 부진한 판매로 인해 2022년 닷선 브랜드 차량의 판매를 종료했다.[111]
일본에서는 1981년 이후 순차적으로 "닛산" 브랜드로 변경되었다.[285] 닷슨(ダットソン) 브랜드는 전신인 다트자동차제조가 1930년에 시제차를 완성하면서 "DAT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DATSON(닷슨)으로 지었으나, "손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1년 만에 DATSUN으로 변경되었다.
2020년에는 스파이더맨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으나, 판매 부진, 적자, 일본 불매운동 등의 영향으로 2020년5월 28일 대한민국 시장에서 12월까지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A/S는 2028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닛산 본사
4. 2. 인피니티
1989년에 도요타의 렉서스와 함께 출시된 닛산의 프리미엄 고급 세단 브랜드이다. 렉서스와 달리 우아함보다는 스포티함을 추구하였지만, 일본적임을 보여주는 광고 때문에 판매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부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공식 수입되어 판매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Q45, M35hL (현 Q70L), M45, M37, M35, M35h, M30d (현 Q70), G37, G35 (세단 / 쿠페, 현 세단은 Q50, 현 쿠페는 Q60), G25 (현 Q40), EX35, EX37 (현 QX50), JX35, JX35h (현 QX60), FX30d, FX35, FX37, FX45, FX50 (현 QX70), QX56 (현 QX80) 모델을 판매했다.
1999년 경영난 악화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프랑스르노의 계열사로 해외 매각에 성공한 이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각을 이루었다.[331] 닛산과 르노는 서로 상대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로 제휴 연합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프랑스 국내법의 제한으로 닛산은 르노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닛산이 보유하는 르노 주식이 훨씬 적어(15%) 르노가 닛산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2016년에 닛산은 연비 조작 문제가 불거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22억달러에 인수하는 것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르노 닛산 양자 간의 얼라이언스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삼자 체제가 되었다.[331]
얼라이언스의 수장사인 르노는 닛산 외에도 대한민국 르노코리아자동차, 루마니아 다치아 등을 소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메릴랜드의 닛산 대리점
2003년, 닛산과 동풍자동차는 50:50 지분으로 합작회사 동풍닛산자동차유한공사(DFL)를 설립했다.[106]
2010년 4월 7일, 다임러 AG는 보유 지분의 3.1%를 닛산과 르노로부터 각각 3.1%씩 교환했다.[99]
2012년 12월 12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로스테크와 합작 투자하여 러시아 최대 자동차 회사이자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인 라다의 소유주인 아브토바즈의 장기적인 지배 주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100]
닛산은 인도에서 아쇼크 레이랜드와 제휴하여 경상용차를 생산했다.[12]
닛산은 미쓰비시 자동차와 함께 경차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있는 미쓰비시의 미즈시마 공장에서 NMKV 합작 투자를 통해 생산된다.[12][109]
6. 생산 방식
1994년 삼성자동차(현 르노코리아)에 기술 지원을 실시했다.[236]1999년 3월 프랑스의 르노와 자본 제휴하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결성하고 르노의 자회사가 되었다. 같은 해 6월, 르노 부사장 카를로스 곤이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취임하여 경영 재건 계획인 「닛산 리바이벌 플랜」을 발표했다.[236]
7. 플랫폼
닛산 V 플랫폼
닛산 B 플랫폼
닛산 C 플랫폼
닛산 D 플랫폼
닛산 FF-L 플랫폼
닛산 FR-L 플랫폼
닛산 PM 플랫폼
닛산 F-알파 플랫폼
닛산 LDT 플랫폼
CMF-A, CMF-B, CMF-C/D (모두 CMF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임)[237]
8. 엔진
닛산은 1960년대 이후 엔진 형식을 정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다만 르노와 공동 개발한 M9R 엔진이나 다른 회사에서 공급받는 차종에 탑재되는 엔진에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274]
엔진 계열
배기량 (100cc 미만은 반올림)
밸브 기구
연료 공급 방식
과급기
알파벳 1~2글자
배기량의 100cc 미만을 반올림하여 100으로 나눈 값 (1000cc 미만이면 머리에 "0"을 붙임)
SOHC 또는 OHV는 공란, DOHC는 "D", NEO VVL 또는 VVEL은 "V"
기화기는 공란, 전자 제어 기화기는 "S", 트윈 기화기는 "T", 싱글 포인트 인젝션은 "i", 연료 분사 장치는 "E", LPG 엔진은 "P", CNG 엔진은 "N", 직분사 엔진은 "D"
자연 흡기는 공란, 싱글 터보는 "T", 트윈 터보는 "TT", 슈퍼차저는 "R", 트윈차저는 "RT", 디젤 엔진 인터쿨러는 "i"
같은 배기량에 보어·스트로크가 다른 경우, 숫자 대신 "A"를 붙인다. (예: MR18DE→MRA8DE)
차량 검사증의 '원동기 형식' 란에는 엔진 계열과 배기량까지만 기재된다. 밸브 기구, 연료 공급 방식, 과급기는 모델 플레이트에 괄호 안에 표기된다.
LPG 엔진의 경우, 가스 믹서식은 "P", 전자 제어 액체 연료 분사 방식(LPI)은 "PE"로 표기한다.
CNG 엔진은 "QG18DEN" 한 가지만 발매되었으며, 전자 제어 방식이므로 "EN"으로 표기한다. (LPG와 달리 "E"가 먼저 온다.)
직분사와 포트 분사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 "D"와 "E"를 모두 붙인다.
VQxxHR계("VQxxDE"에 대한 "'H'igh 'R'evolutions", 즉 고회전 사양)나 HR14DDe(e-POWER의 발전 전용 엔진)처럼 예외도 있다.
; 엔진 형식 예시
엔진 형식
엔진 계열
배기량
밸브 기구
연료 공급 방식
과급기
A10
A시리즈
1000cc
OHV
기화기
자연 흡기
CA18i
CA시리즈
1800cc
SOHC
싱글 포인트 인젝션
자연 흡기
SR20DET
SR시리즈
2000cc
DOHC
EGI 멀티 포인트 인젝션
싱글 터보
VQ23DE
VQ시리즈
2300cc
DOHC
EGI 멀티 포인트 인젝션
자연 흡기
YD25DDTi
YD시리즈
2500cc
DOHC
NEO Di
인터쿨러 부착 터보
TD27T
TD시리즈
2700cc
OHV
분배형 분사 펌프
싱글 터보
VK56VD
VK시리즈
5600cc
VVEL
DIG
자연 흡기
RB26DETT
RB시리즈
2600cc
DOHC
EGI 멀티 포인트 인젝션
트윈 터보
HR12DDR
HR시리즈
1200cc
DOHC
DIG
슈퍼차저
VQ37VHR
VQ시리즈
3700cc
VVEL
하이・레볼루션/하이・레스폰스
자연 흡기
MRA8DE
MR시리즈
1800cc
DOHC
EGI 멀티 포인트 인젝션
자연 흡기
BR06DET
BR시리즈
660cc
DOHC
EGI 멀티 포인트 인젝션
싱글 터보
; 닛산 엔진 관련 기술 용어
'''NAPS'''(냅스): "'''N'''issan-'''A'''nti-'''P'''ollution-'''S'''ystem"의 약자로, 저공해차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신조어이다. 백금 펠릿 산화촉매(1978년 규제 적합 차량은 삼원촉매)를 중심으로 한 배기가스 정화 시스템으로, 1975년, 1976년, 초기 1978년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적합 차량에 사용되었다.
'''PLASMA'''(플라즈마): "'''P'''owerful&Econonomic-'''L'''ightweight-'''A'''ccurate-'''S'''ilent-'''M'''ighty-'''A'''dvanced"의 약자로 만든 신조어이다. 신세기 엔진 시리즈의 애칭으로, 토요타의 "LASRE(레이저)"에 대항하기 위해 이름 붙였다.
'''NEO'''(네오): 1990년대 후반부터 채용. "'''N'''issan '''E'''cology '''O'''riented performance"의 약자이며, 영어 접두사 "neo"(새로운)와도 관련이 있다. "NEO 스트레이트 6"(RB계 엔진), "NEO QG"(QG 엔진), "NEO VQ"(VQ 엔진), "NEO VK"(VK 엔진), "NEO Di"(직분사 엔진), "NEO VVL"(가변 밸브 기구) 등의 변형이 있으며, 엔진 형식 뒤에 "'''NEO'''"가 붙는다.
'''EGI'''(전자 제어연료 분사 장치): "'''E'''lectronic-'''G'''asoline-'''I'''njection"의 약자로, 일본차 최초의 전자 제어 연료 분사 장치이다. 비슷한 장치는 등록상표화된 각 회사에 따라 다른 명칭이 붙지만, 당시 계열사였던 후지중공업(현 SUBARU)은 공용이 허용되었다.
'''ECCS'''(엑스): "'''E'''lectronic-'''C'''onetrated-Engine-'''C'''ontrol-'''S'''ystem"의 약자. 세계 최초의 전자 제어 장치이며, 현재의 엔진 제어 장치(ECU)의 원조이다. 하나의 마이크로컴퓨터로 연료 분사량, 배기가스 환원량, 아이들 회전수, 연료 펌프 제어 등을 항상 최적으로 제어하여 연비 향상, 배기가스 정화, 주행 성능 향상을 꾀한다.
'''e-POWER'''(이파워): 시리즈식 하이브리드 기술의 명칭. 엔진을 발전에 이용하고, 모터로 구동하여 가속 성능과 정숙성 향상을 꾀한다.
'''NVCS''': "'''N'''issan-'''V'''alve-Timing-'''C'''ontrol-'''S'''ystem"의 약자. 위상 가변형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로, 양산차에서는 세계 최초의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되었다. 밸브 타이밍은 2단 변환식이다. 현재는 연속 가변의 '''CVTC'''(유압식과 전자식)으로 발전했다. 흡기측과 배기측 양쪽에 장착된 경우는 "트윈 CVTC"가 된다.
'''VVEL''': "'''V'''ariable-'''V'''alve-'''E'''vent-and'''L'''ift-system"의 약자. 포펫 밸브의 작동 각도와 리프트량을 연속적으로 가변 제어하는 기구. BMW가 개발한 VANOS와 조합한 밸브트로닉과 같은 효과가 있다.
'''수소 프리 DLC''': 전용 오일과의 조합으로 부품 간 마찰을 약 40% 줄인다. 2008년에는 밸브 리프터에만 채용되었지만, 앞으로는 피스톤 링이나 피스톤 핀 등에도 채용할 예정이다. 2011년 유럽 시장용 마이크라(일본명: 마치)의 HR12DDR 엔진에는 리프터와 피스톤 링에 수소 프리 DLC가 사용되었고, 2012년부터 일본 시장의 노트에도 탑재되었다.
'''DIG''': "'''D'''irect '''I'''njection '''G'''asoline"의 약자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의미한다. 2010년 인피니티 M56의 VK56VD에 처음 채용되었다. "DIG TURBO"(터보차저 탑재), "DIG-S"(루츠식 슈퍼차저 탑재), "VVEL DIG"(VVEL과 조합) 등의 변형이 있으며, 일부 차종에는 엠블럼이 부착된다.
'''PURE DRIVE'''(퓨어 드라이브): 닛산의 "엔진 진화형 에코카"의 총칭으로, 아이들링 스톱 시스템,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 기존 가솔린차 엔진에 부가하는 기술로 연비를 향상시킨 차종이다. 클린 디젤차도 포함된다. "PURE DRIVE" 엠블럼이 부착되지만, 하이브리드차에는 "HYBRID", 스마트 심플 하이브리드차에는 "S-HYBRID", 에코 슈퍼차저 탑재차에는 "DIG-S", 클린 디젤차에는 "dCi"가 추가된다. 참고로, e-POWER도 "PURE DRIVE" 시리즈의 일원으로 기획되어 2015년 프랑크푸르트쇼의 컨셉카 "GRIPZ(그립스)"에는 "PURE DRIVE e-POWER" 엠블럼이 부착되어 있었다.
9. 연구 개발
1982년, 닛산의 최초 최종 조립 로봇이 마치/마이크라가 조립되던 무라야마 공장에 설치되었다. 1984년에는 자마 공장의 로봇화가 시작되었고, 이 자동화 과정은 닛산 공장 전체로 확대되었다.[83]
닛산 전기 자동차는 1946년부터 간헐적으로 생산되어 왔다. 2010년에는 닛산 리프 플러그인 배터리 전기 자동차가 출시되었으며, 거의 1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플러그인 전기차였다. 이전에는 알트라와 하이퍼미니가 있었다. 테슬라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닛산은 2018년 4월 기준으로 32만 대가 넘는 순수 전기차를 세계적으로 판매하며 세계 최대 전기 자동차(EV) 제조업체였다.[139] 2022년에는 닛산이 전기 자동차용 고체 전지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84]
닛산의 고성능 부품 브랜드인 닛산 NISMO(NISMO) 매장 (일본 요코하마시 쓰루미구)
닛산의 자율 주행 자동차 시제품 기술이 닛산 리프(Nissan Leaf) 전기 자동차에 장착되었다.
2013년 8월, 닛산은 2020년까지 여러 대의 무인 자동차(driverless car)를 출시할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일본에 자율 주행 시험장을 건설하고 있다. 닛산은 시연 목적으로 자율 주행 자동차 기술을 닛산 리프(Nissan Leaf) 전기 자동차에 장착했다. 2013년 9월, 시제품인 고급 운전자 지원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이 장착된 리프는 일본 공공 도로 주행을 허가하는 번호판을 발급받았다. 공공 도로에서의 주행 시간은 완전 자동화된 주행을 위한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148]
닛산의 중앙 연구소[172]는 1961년 운영을 시작한 요코스카시의 옵파마 공장 부지 내에 있으며, 이전에는 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대 기지가 있던 곳이다. 1982년, 도쿄도스기나미구와 요코하마시쓰루미구에 있는 닛산의 기술 센터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나가와현아쓰기시의 다자와 산맥의 오야마 산 기슭에 닛산 기술 센터(NTC)가 설립되었다.
2007년, 회사는 NTC 부지 근처에 닛산 첨단 기술 센터(NATC)를 개설했다. 이 센터는 중앙 연구소, 실리콘밸리 사무소, 요코하마시 중심부의 닛산 본사 근처 기술 사무소, 그리고 디트로이트, 실리콘밸리, 모스크바에 있는 해외 사무소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176]
닛산의 시험 코스는 도치기현(두 곳), 요코스카시 및 홋카이도에 있다. 2018년 중반, 닛산은 인도케랄라주티루바난타푸람에 소프트웨어 및 정보기술 개발 센터를 여러 곳 계획 중 첫 번째로 설립했다.[177]
닛산의 “종합연구소”(기초 연구·개발)는 추하마 지구(요코스카시 나츠시마정)에 있다.[278] 1982년에 그때까지 쓰루미 지구, 오기쿠보 지구로 나뉘어 있던 기술 거점을 통합하여 가나가와현의 다나자와 산맥의 오야마 산기슭(아쓰기시 오카즈 고쿠)에 “닛산 테크니컬 센터”(NTC)를 설립했다.[279]
2007년에는 닛산 테크니컬 센터 근처의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아쓰기 캠퍼스 옛터(아쓰기시 모리노사토 아오야마)에 “닛산 선진기술센터”(NATC: 선행 기술 개발, 기초 연구 개발)를 설립했다.[280] 이것은 상기의 종합연구소, 요코하마 본사뿐만 아니라, 새롭게 인도·첸나이, 미국디트로이트 및 실리콘밸리, 러시아·모스크바의 거점과도 연계하여 선진 기술의 개발을 진행한다.[281]
차량의 프루빙 그라운드(주행 시험로)에는, 도치기 시험장, 모기 시험장, 추하마 시험장, 홋카이도 리쿠베쓰 시험장이 있다. 해외에는, 닛산 테크니컬 센터 북미(설계·기술개발 및 상품개발, 실험, 미국 미시간주디트로이트 북서 교외의 퍼밍턴힐스), 닛산 테크니컬 센터 멕시코(설계·기술개발·구매 및 애프터세일즈), 닛산 디자인 아메리카(차량 디자인)가 있다.[282]
2020년에는 스파이더맨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으나, 판매 부진과 적자, 그리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여파로 인해 2020년5월 28일 한국닛산은 12월까지 영업을 종료하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329] 다만, A/S는 2028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다.[329]
12. 비판 및 논란
닛산은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과 법적 문제에 직면해 왔다.
1966년, 닛산은 남녀 간 정년 차별(남성 55세, 여성 50세)이 민법 제90조(공서양속 위반)에 따라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이전의 사건이다.[310]
토치기 린치 살인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중 한 명이 닛산 공장 직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회사가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2007년에는 판매 자회사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를 증자로 해소한 것에 대해 6000억엔이 넘는 추징금을 부과받았다.[310]
2009년에는 여성 파견 근로자를 부당하게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도쿄노동국으로부터 시정 지시를 받았다. 닛산은 이를 부인하고 단체교섭을 거부했으며, 신고자 중 한 명은 고용이 종료되었다.[311] 또한, 해고된 직원 5명이 위장 파견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요코하마 지방법원은 2014년 이를 기각했다.[312][313]
2017년에는 ZE1형 리프의 이미지가 트위터에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닛산은 유출자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314]
같은 해, 닛산은 무자격 직원이 완성차 검사를 수행한 사실이 국토교통성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는 6개 공장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38개 차종 116만 대가 리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315] 닛산은 초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후 추가적인 무자격 검사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내용 신차 판매를 중단하고 사과했다.[316][317][318] 이 사건은 일본 자동차 형식 지정 검사 제도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시켰다.[322]
2018년에는 배기가스 성능 검사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324] 같은 해 12월에는 브레이크, 핸들, 속도계 등 6개 항목에 대한 검사 부정 행위가 적발되어 11개 차종 15만 대가 리콜되었다.[325]
2024년에는 하청업체에 대한 지불 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되어 재발 방지를 권고받았다. 감액 규모는 300억엔을 초과하며, 이는 하도급법 시행 이후 최고액이다.[326][327][32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